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이미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업 현장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그 노동자들 중에는, 체류 자격을 가진 합법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자가 만료되었거나, 제도 밖으로 밀려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그들은 법적으로는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지만,
현실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한국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미등록 상태가 되었을까요? 단순히 ‘법을 어겼기 때문’ 인가요?
오늘은 고용허가제라는 제도의 바깥에서
미등록 노동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그들이 이 제도 안에서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인지, 혹은 '강요된 순응' 속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입국부터 배치까지, ‘선택’이 아닌 정해진 경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국 전부터 고용주가 정해진 상태로 한국에 오게 됩니다.
한국 정부와 송출국 정부 간 협약을 통해 인력이 선발되고,
사전에 정해진 업종과 사업장에 배정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의 일터, 위치, 고용주조차 선택할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이게 됩니다.
더욱이, 그들이 한국어와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복잡한 행정절차를 따라야 하며, 직장에서의 부당한 처우나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고용 초반부터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이처럼 고용허가제는 명목상으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노동자의 자기 결정권을 배제한 일방적인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노동자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조건에 따라 살아가는 것에 가까운 수동적 수용자의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비자 만료 이후에도 "남아야 한다"는 결심은
오히려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지, 단순한 불법 체류의 선택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직장 이동 제한, 제도에 순응을 강요받는 현실
고용허가제의 또 다른 핵심적인 제약은 사업장 이동 제한입니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고용주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당한 사유의 인정 기준이 매우 엄격하여,
폭언, 임금 체불, 부당한 업무 강도와 같은 상황에도 쉽게 이동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노동자에게 ‘순응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게 됩니다.
참지 않으면 비자가 끊기고, 다른 일터를 찾지 못하면 귀국해야 하며,
가족에게 송금하던 생계 기반은 그대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조용히 참고 일하다가,
사업장이 폐업하거나 계약이 해지되었을 때 비자 갱신을 하지 못한 채 미등록 상태로 남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제도를 '이탈한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강요한 순응에서 벗어나 삶을 지키기 위해 남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공식적으로 선택지를 제시하지만,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선택할 자유가 없는 틀 안의 게임을 강요하고 있는 셈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바깥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고립
미등록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한국 사회 내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처한 정보 격차와 언어 장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고용허가제를 유지하려면 체류 자격 연장, 사업장 변경, 각종 신고 등의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그 모든 절차는 대부분 한국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관련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서류 제출 기한을 놓치거나, 연장 요건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체류 자격이 만료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제도는 ‘고의성이 없다면 구제 가능하다’는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고,
노동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등록 상태로 전락해 버리게 됩니다.
게다가 노동청, 출입국, 고용지원센터 등 각 기관은
외국어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제공하거나,
담당자의 태도에 따라 안내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노동자는 제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서서히 바깥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고립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고용허가제는 형식적으로는 ‘보호 제도’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만 이용 가능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결국 수많은 이들이 제도의 미비와 불친절로 인해 미등록자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방적인 비자 만료 방식이 만들어낸 미등록화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는 원칙적으로 3년+1년 10개월(최장 4년 10개월)의 체류 기간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귀국해야 하며,
재입국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자를 철저히 '임시 인력'으로만 간주하며,
인간적인 삶의 연속성이나 장기적 생존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몇 년간 일하며
언어를 익히고, 지역사회에 적응하고, 심지어 가족을 한국에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자 기한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관계를 끊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은
정서적, 경제적으로 너무 큰 단절을 강요당하는 현실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으며,
한국에서 번 돈은 대부분 가족의 빚을 갚거나,
생활비로 이미 소진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은 다시 돌아오거나, 한국에 남을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결국 비자 만료 후에도 남아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의 ‘불법 체류’가 아니라,
제도의 일방적인 종료 방식이 만들어낸 미등록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더 이상 '강요' 아닌 '선택'으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불법 고용과 체류를 줄이기 위한 선의의 제도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등록 노동자의 시선에서 이 제도를 다시 바라본다면,
그 안에는 ‘선택’이라는 말보다 ‘강요’라는 현실이 더 짙게 담겨 있습니다.
입국부터 귀국까지 정해진 경로 안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으며,
그 결과로 제도에 벗어난 사람은 ‘불법’이라는 낙인만을 감당해야만 한다.
앞으로의 고용허가제는 ‘허가’라는 이름 아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미등록 노동자 또한, 과거의 선택이 아닌
지금의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 선택이 더 이상 죄가 되지 않도록,
제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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