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의 외국인 노동자 정착 제도 비교와 교훈
우리는 오늘도 익숙한 도시를 걷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득,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사람이,
공사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이,
농장에서 작물을 수확하는 사람이
나와는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일하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수년째 한국 사회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어느덧 이웃이자 동료가 되어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그들의 ‘정착’을 위한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왔는지를 돌아보면,
비록 이 사회에서 많은 부분에서 칙임을 다 하고 있지만,
삶은 허락하지 않는 구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외국인 노동자의 정착을 위해 어떤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차이가 어떤 사회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비교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비교 속에서 우리가 어떤 점을 배워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한국 외국인 노동자 : 고용은 허용하지만, 정착은 제한된 구조
한국은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제도는 분명 정부 주도로 투명하게 운영되는 장점이 있으며,
중개인의 개입을 줄이고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일정 부분 보호하는 구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아시아권에서도 모범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여전히 ‘노동력 수급’ 중심으로만 설계되어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로 제한되어 있고,
그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귀국해야 하며,
가족 동반, 영주권 전환, 이민 정착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외국인 노동자를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으로만 간주하고 있다는 인식만 주고,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통합 가능성에 제약을 주는 요인이 됩니다.
또한 체류 기간 이후 재입국이 어려운 경우,
일부 노동자들은 미등록 상태로 남게 되어
제도 밖에서 살아가는 불안정한 삶을 감내하게 됩니다.
일본 외국인 노동자: 기능 중심의 이주 제도, 정착의 문은 점차 열리고 있습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바로 ‘특정기능 제도’라는 이름의 새로운 고용 체계를 도입하면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정착 가능성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특정기능 1호 비자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는 최대 5년까지 일본 내에서 일할 수 있으며,
특정기능 2호로 전환할 경우에는 가족 동반과 장기 체류, 영주권 신청까지 가능합니다.
물론 산업별 기준은 까다롭고, 일본어 능력과 업무 숙련도 등 일정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지만,
‘기능’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단순 노동자에게도 정착의 기회를 부여하는 전환적 접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지자체 단위에서 외국인 주민을 위한
일본어 교육, 지역 정착 상담, 문화 교류 행사 등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도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인식과 참여를 통해 보다 자연스러운 통합이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대만 외국인 노동자: 유연한 체류 구조와 ‘부분적 정착’의 가능성
대만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먼저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한 나라 중 하나이며,
1992년부터 시작된 고용제도를 통해
제조업, 간병, 어업, 건설 분야에서 수십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고용 구조가 유연하고, 체류 기간 연장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는 3년간 체류할 수 있으며,
최대 12년까지도 연장이 가능합니다.
특히 간병인이나 숙련 기술직의 경우,
‘장기체류형 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 정착의 가능성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만은 민간 중개인을 통한 인력 송출과 고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입국 전부터 고액의 송출 비용과 중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또한 체류 중에도 중개인을 통한 관리가 지속되며,
노동자의 자율성과 권리 보호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뒤처지는 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류 기간과 정착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외국인 노동자: 고용 중심의 초단기 순환 모델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높은 국가들입니다.
특히 싱가포르는 전체 노동력의 약 25% 이상이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레이시아 역시 농업과 제조업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들 국가는 철저하게 노동력 수급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관리합니다.
체류 기간은 짧고, 가족 동반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며,
이민이나 장기 체류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일하러 오고, 일 끝나면 떠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정책은 단기적으로 고용주는 편리할 수 있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권리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나 차별 정서가 깊어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착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교육, 언어, 통합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곳에서 함께 숨 쉬고,
함께 일하고, 함께 자라나는 이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은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각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누구는 빠르게 정착 기회를 열고 있고,
누구는 여전히 문턱을 높게 두고 있으며,
또 누구는 철저히 고용만 허용하고 삶은 배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교 속에서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용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 수 없으며,
정착과 통합을 위한 정책적 상상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이 고용허가제를 넘어,
‘공존허가제’ 또는 ‘통합 기반 노동 정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속과 통제가 아닌, 신뢰와 권리, 그리고 존중의 언어로 제도를 다시 보완해야 할 때입니다.
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경험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