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 20년: 제도 변화가 필요한 이유
2004년, 한국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체계적 유입과 노동권 보호를 목적으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체류자가 아닌 합법적 노동자로 인정하고,
그들을 법과 제도 속에서 보호하겠다는 전향적인 시도였습니다.
이 제도는 도입 당시 노동계, 재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이주노동자 인권의 전환점’이라는 의미 있는 평가도 뒤따랐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고용허가제는 한국의 산업 전반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중소 제조업체, 농축산업, 건설업, 어업 등 국내 인력 수급이 어려운 분야에서
이주노동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고,
그들의 땀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산업 기반은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 시행 20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에게는 부담을,
고용주에게는 편의를, 국가에게는 행정 효율의 성과를 안겨졌으나,
그 안에 내재된 구조적 문제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제도적 미비를 함께 생각하고,
왜 지금이야말로 제도 개혁의 중요한 전환점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의 원칙은 ‘보호’ 현실은 ‘통제’
고용허가제의 출발점은 외국인 노동자를 제도권 안에서 보호하고,
사업주와 노동자의 권리·의무를 명확히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제도는 본래의 취지에서 점차 멀어졌고,
현재는 외국인 노동자를 일방적인 행정 절차와 규율 속에 놓이게 하는 통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거나, 폭언·폭력을 가하더라도,
노동자가 스스로 이직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행정당국이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한 절차 또한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이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은 부당한 상황을 견디며,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채 일하는 현실에 놓이게 됩니다.
게다가 체류 기간 역시 최장 4년 10개월로 제한되어 있으며,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귀국해야 하고 재입국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외국인 노동자를 일시적인 소모품처럼 다루는 방식으로 비치며,
고용의 지속성과 사회적 통합이라는 측면에서는 거꾸로 가고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정체된 제도’
2004년의 한국 사회와 2024년의 한국 사회는 분명히 다릅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동력 부족은 농촌과 중소기업을 넘어
도시 내 서비스업, 돌봄 분야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는 단지 '필요한' 존재를 넘어서 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유연하게 개편되지 못하고,
20년 전 도입 당시의 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 확대, 고용주의 책임 강화, 제도 접근성 향상 등
현장 중심의 목소리는 여전히 제도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체류 기간이 종료된 노동자들에게 귀국을 요구하는 방식은
이미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가족을 이루고, 지역에 뿌리내린 이주민들에게는
사실상 ‘삶을 단절하라’는 통보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고용주는 여전히 낮은 인건비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충분한 교육이나 근로 조건 개선 없이 인력을 반복적으로 교체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노동의 질은 낮아지고, 이주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단속 중심의 접근은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불법 체류를 줄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현실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도의 허점과 경직성이 노동자를 제도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업장이 폐업하거나, 고용주가 계약 해지를 통보하거나,
행정적 실수로 비자 연장 기간을 놓친 경우,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미등록자’가 됩니다.
그 이후 제도권 안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으며,
노동자는 단속과 추방의 위험 속에서 비공식 일자리를 전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게다가 고용주의 일부는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식 고용을 선택하거나, 중간 중개인을 활용하여
불안정한 노동력 구조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법적 질서와 고용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단속과 처벌이라는 접근을 넘어,
제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도 제도권 복귀의 기회와 제도 개선의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는 ‘공존’과 ‘통합’의 비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고용허가제는 단순히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외국인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담아야 합니다.
노동자에게는 자유로운 직장 선택권과 장기 체류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고용주에게는 책임 있는 고용과 근로 조건 개선의 의무를 부과하며,
정부는 그 사이에서 공정한 조정자이자 인권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주노동자를 단지 ‘노동력’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주민 자녀의 교육, 의료, 언어, 주거 문제까지 포괄하는
통합적인 이주 정책과 함께 고용허가제를 재설계해야
진정한 ‘공존 사회’로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지난 20년간의 성과를 되짚고
그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형 이주노동 제도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할 시기입니다.
새 시대에 걸맞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 필수
고용허가제는 한국 이주노동 정책의 역사에서 큰 이정표였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살아 있는 사회와 함께 끊임없이 변해야 하며,
한때 유효했던 틀이라 하더라도
2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변화와 확장이 필수적입니다.
이제 고용허가제는 ‘허가’라는 단어를 넘어서
‘신뢰’와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이주노동자를 단지 외부 노동력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