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재진입 기회가 필요한 이유
한국은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며,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와 노동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왔습니다.
이는 산업현장의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소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목적 아래 마련된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제도 시행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수십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미등록 상태로 남아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애초에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했습니다.
이들 미등록 노동자는 비자 만료, 직장 변경 실패, 제도적 허점, 또는 귀국 불가능 등의 이유로 체류 자격을 잃게 되었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한국 사회에서 조용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는 그들에게 다시 합법적 체류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한 번 미등록자가 되면 고용허가제 재입국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운영방침은 과연 효과적인 것일까요?
그리고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재진입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왜 필요한가요?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시도입니다.
단속과 추방 중심의 정책을 넘어서, 이제는 현실에 기반한 유연한 제도로 나아가기 위해,
고용허가제에 ‘재진입 제도’를 포함해야 하는 이유를 한번 짚어보려 합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던 외국인 노동자의 경험과 역량은 한국 사회의 자산입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던 노동자들은
최소 수년 동안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일하며 현장 적응력과 언어 능력, 직무 숙련도를 쌓아온 사람들입니다.
특히 제조업, 농축산업, 건설업, 어업 등 이른바 '3D 업종'이라 불리는 분야에서
그들이 해온 역할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그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기반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체류 자격을 잃었다고 해서, 그 모든 경력과 기여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의 현장 경험은 초기 입국 노동자보다 더 높은 효율과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하지만 현재 고용허가제는 한 번 미등록 이력이 생긴 외국인에 대해 전면적인 입국 제한 조치를 적용하고 있어,
결국 한국 사회는 숙련된 인력을 제도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이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는 지방 중소기업이나 농촌 사업장 입장에서는,
익숙한 현장과 노동 환경을 알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재입국이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재진입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은 단지 인도적 조치가 아니라, 한국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상태의 전환은 제도의 경직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부분의 미등록 노동자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합법적인 비자를 받고 입국했고, 성실히 근무했으며,
다만 특정 사유로 인해 비자 연장이나 사업장 변경에 실패하면서 제도 밖으로 밀려났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장이 폐업하거나 고용주와의 갈등으로 이직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이직 사유가 ‘행정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변경이 불허되면서
비자 연장 기회를 잃고 체류 자격이 만료된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또한 귀국을 했지만, 본국의 경제적 사정이 나빠
한국에서 재입국을 희망해도 제도상 '미등록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입국이 차단되는 일도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는
제도의 경직성과 현장과의 괴리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면,
그 장치에서 이탈한 사람에게도 일정한 조건 아래 복귀의 기회를 제공해야
제도적 완결성과 사회적 포용이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등록 전력이 있다고 해서 노동자 전체를 배제하는 것은
단속 중심 행정의 단편적인 접근이며,
이제는 ‘왜 미등록이 되었는가’를 묻고
그 이유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유연한 틀이 필요합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강제 추방과 입국 금지는 사회적 비용만 키운다
현재 제도는 미등록 노동자가 단속되면 강제 출국 조치를 내리고,
출국 후 최소 3년 이상 입국이 금지되는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처벌’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먼저, 숙련된 노동자가 퇴출되면서 해당 산업은 잦은 이직과 재교육으로 인한 인건비 손실을 겪게 됩니다.
또한, 일부 미등록 노동자는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욱 음지로 숨어들고,
그 결과 고용주는 비공식 고용을 통해 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자에게도, 고용주에게도, 그리고 국가에게도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닙니다.
추방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노동자 중, 성실하게 일했던 경력과 평판을 가진 사람에게는
재입국의 기회를 부여하고, 제도권 안으로 다시 들여오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합법 전환 제도(regularization program)’는
유럽 여러 국가에서 도입되어 실효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이제는 단속 중심의 응보적 시스템을 넘어, 회복과 재통합의 방향으로 전환할 시점입니다.
공정성과 인권의 균형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미등록 노동자에게 재진입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관대한 정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도에 공정성과 유연성을 더하는 조치이며,
동시에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노동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정 기간 이상 성실하게 체류하며 근무했던 이들에게
재입국 심사를 통해 제한적 재고용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노동시장의 안정성과 도덕적 메시지 모두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들이 일했던 고용주, 지역사회, 그리고 가족과의 연계성까지 고려한다면
재입국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정책적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기존의 불법 고용 구조를 공식화함으로써
중개인 착취 구조의 확산을 막고,
노동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즉, 고용허가제에 미등록 노동자의 재진입 경로를 제도화하는 것은
법적 정합성과 사회적 통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합리적 방향입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재진입의 기회를 마련 포용하는 사회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처음부터 법을 어기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 대부분은 고용허가제의 틀 안에서 일하다가,
현실적 한계와 제도적 구조 속에서 바깥으로 밀려난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다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재진입의 기회’는 선택이 아닌,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제도적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삶을 위한 배려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성숙한 태도와 책임 있는 제도 운영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인간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포용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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