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양산하는 구조적 원인 분석
한국은 지난 20여 년간 외국인 노동자 고용 제도를 점차 제도화하며
합법적인 체류와 취업의 길을 열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2004년에 도입된 '고용허가제(E-9 비자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과거 중개인 중심의 비공식 취업 구조에서 벗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부 허가를 통해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든 정책적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한국 내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수는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한국 내 미등록 외국인은 약 4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 중 다수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가 일정 시간 지난 후 미등록 상태로 전환된 노동자들입니다.
원래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불법 고용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였는데,
왜 제도 아래에서 미등록자가 양산되고 있는지.
실미등록 노동자가 생기는 구조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법과 행정, 산업현장, 제도 운영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표면적인 ‘불법 체류’ 뒤에는 제도의 결함과 정책 설계의 한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제한적인 사업장 변경 규정이 불안정한 고용을 고착
고용허가제에서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원칙적으로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사전에 지정된 고용주와 계약을 맺고 들어오며,
근무 중인 사업장이 폐업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자유롭게 직장을 옮길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사업주와의 갈등, 임금 체불, 열악한 근무 환경, 언어폭력 등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있는 문제들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행정당국은 이를 '객관적 입증'이 가능한 수준의 문제로 제한하며
사업장 변경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참거나, 병에 걸려도 말을 못 하거나,
결국은 계약이 끊어진 상태에서 더 이상 공식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며,
남은 선택지는 비자 만료 후 ‘미등록 상태’로 일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일하고 싶어서 남았을 뿐인데,
제도는 ‘당신은 불법이다’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구조입니다.
이처럼 사업장 변경에 대한 지나친 제한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권을 억압하고,
그들을 미등록 상태로 떠미는 제도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개인인의 부활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공식 채용 경로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과거의 중개인 중심 외국인 노동자 송출 방식은 크게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도의 복잡성, 언어 장벽,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노동자들은 다시 중간 중개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다시 부활해서
특히 고용주가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사업장이 폐업하는 등의 이유로
이주 노동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할 때,
공식 절차를 안내받고 지원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고용센터의 행정 절차는 벽과도 같고,
제도적 안내 부족 속에서 중개인은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요구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자 기간이 만료되는 경우가 많고,
노동자는 공식 등록 없이 일하게 되며,
불법 체류 상태로 전락해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장을 떠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고용허가제가 중개인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중간착취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즉, 제도가 단순히 존재한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얼마나 작동 가능한가 가 본질이라는 점을 드러냅니다.
귀국 정책 중심의 운영이 미등록 노동자의 존엄과 현실을 외면합니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체류 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입니다.
그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귀국해야 하며,
‘재입국’을 통한 재고용은 제한적이고,
동일 고용주가 아닌 경우 신규 입국의 기준은 더욱 까다롭습니다.
문제는 이 정책이 이주노동자를 단지 ‘기간제 노동력’으로만 본다는 점입니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4~5년을 일하며 적응해 온 외국인 노동자에게,
단지 체류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귀국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획일적인 행정 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은 고향에 남겨진 가족을 위해 빚을 지고 한국에 왔고,
그 빚이 아직 다 갚으지 않은 상태에서 귀국하면,
오히려 더 큰 생계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적 이유 때문에, 비자 기간 만료가 곧 출국으로 이어지지 않고,
미등록 체류로의 자연스러운 전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즉, 체류 기간 종료 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일하면 떠나라’ 식의 제도 운영은
이주노동자를 소모품처럼 다루는 정책 인식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제도와 현장 사이의 괴리, 실질적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보호 부재
고용허가제는 국가 간 협약과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계된 제도입니다.
하지만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허가제가 실질적인 노동권 보호 장치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노동자가 정당한 사유로 이직을 요청하더라도
행정의 벽과 절차의 부담은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고용주는 노동자와의 지속적 권력 비대칭을 이용해 임금 체불, 언어폭력, 부당대우를 일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체류 자격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문제를 말하지 못하고,
비자 만료 이후에도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제도의 설계 문제를 넘어서,
제도를 운영하는 사회와 행정의 실천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고용허가제는 단지 합법 입국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체류 전 과정에서 인간다운 노동과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고용허가제는 분명 의미 있는 제도입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합법적 체류와 취업을 가능하게 만든 역사적 진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제도가 만들어낸 의도와 달리,
오늘날의 현실은 여전히 수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미등록 상태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결코 단순히 '법을 어긴 개인'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책임을 나누지 않으며, 보호보다 통제를 앞세우는 시스템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입니다.
이제는 고용허가제의 외형보다, 그 내용과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 점검이 필요합니다.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귀국 이후 재입국 허용 유연화,
노동자 보호 기반의 행정 개선이 뒤따를 때,
비로소 고용허가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체계에서
존엄을 보장하는 제도로 전환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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