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퇴직금은 존재하는가?
한국 사회의 많은 산업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길이 빠질 수 없습니다.
농촌의 비닐하우스부터 도시의 건설 현장, 제조업체의 생산 라인, 식당 주방에 이르기까지, 그분들은 땀으로 일터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는 비자가 만료되었거나, 입국 후 체류 자격이 변경되어 ‘미등록’ 상태가 된 외국인 노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체류 자격을 잃은 미등록 노동자는 사회의 그늘에서 일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의료 접근권, 주거 안정권, 그리고 노동권에서도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퇴직금이 지급되나요?”
이 질문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살아온 시간에 대해 사회가 어떤 책임을 지는가,
그리고 제도는 그들의 노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묻는, 존재와 존중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퇴직금 권리에 대해,
현행 법과 판례, 실제 사례와 현실적인 한계까지 함께 살펴보며
그들에게 퇴직금이 ‘존재하는 권리’인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 약속’인지 차근차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적으로 퇴직금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귀속되는 권리
우리나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계속하여 1년 이상 근무한 경우 퇴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 법에서 말하는 '근로자'는 국적, 성별, 신분을 불문하고 실제로 사용자에게 임금을 받고 근로를 제공한 자를 의미합니다.
즉,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합법이든 미등록이든,
실질적으로 근로계약이 성립되어 임금을 받고 일했다면 퇴직금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법원도 여러 판례를 통해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실제 근로를 제공했다면 퇴직금 청구 자격이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고용주가 “당신은 불법체류 자니까 퇴직금 줄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퇴직금은 법적으로 ‘근로’에 대한 보상이지, ‘체류 자격’에 따라 지급 여부가 바뀌는 성질의 돈이 아닙니다.
물론 퇴직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예를 들어, 1년 이상 근속, 실제 퇴직 시점, 고용 관계의 연속성 등을 충족해야 하며,
해당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근무 기록, 급여 명세, 증인 등)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권리를 행사하려면 노동자 본인의 용기와, 사회의 보호 장치가 함께 필요합니다.
현실은 퇴직금 청구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가득합니다
법적으로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퇴직금 권리가 인정되지만,
현실에서는 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가장 큰 장벽은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기 위해 고용주를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하거나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와의 연계가 있을까 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고용주와의 계약이 구두로 이루어진 경우, 근무 일수를 증명할 공식적인 문서가 없는 경우,
급여가 현금으로 지급되어 명세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법적 입증이 매우 어렵습니다.
고용주는 이를 악용해 “너는 불법이니 어디에 말도 못 할 것”이라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 노동자는 퇴직 전에 갑작스럽게 체포되어 강제 출국을 당하면서,
퇴직금이나 미지급 임금을 요구할 기회조차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법은 존재하지만, 법에 닿을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등록 노동자가 퇴직금 등 기본권을 요구할 때
‘신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예컨대 ‘노동권 침해 신고자에 대한 임시 체류 허가’ 같은 유연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모든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가 퇴직금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사례에서는 노동자의 용기, 시민단체의 도움, 법률 지원을 통해 퇴직금을 실제로 수령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서울의 한 공장에서 3년 넘게 일한 네팔 출신의 A 씨는 퇴사 후 고용주가 퇴직금을 주지 않자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근무일지와 문자 메시지, 공장 출입기록 등을 근거로 실제 근속 기간을 인정받아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산업재해로 인해 퇴직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 치료 후 퇴직금까지 함께 지급받은 판례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아직 많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권리가 아니라, 용기와 제도적 접근만 있다면 가능한 권리”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물론 이런 사례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정보의 접근성이 더 확대되어야 하며,
언어 장벽, 법률 지원, 행정 절차에 대한 친절한 안내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퇴직금은 ‘신분’이 아닌 ‘노동’에 따라 지급
퇴직금은 단순한 금전적 보상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성실히 일해왔는지를 사회가 인정하는 기록이자 존중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비자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는 뜻과도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중 많은 분들이 본인의 몸과 시간을 내어 한국의 산업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퇴직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노동의 역사 자체를 무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법은 말합니다.
“퇴직금은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그렇다면 국적이나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일한 모든 사람은 당연히 퇴직금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도 퇴직금 존재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퇴직금은 존재합니다.
단지 그 권리를 행사하는 길이 멀고 험할 뿐입니다.
법은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제도와 사회의 시선은 아직 그 사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권리가 책 속에만 머물지 않도록,
현실 속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더 많은 목소리와 제도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퇴직금은 국적이나 신분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히 일해왔는가에 따라 지급되어야 하는 기본적 권리입니다.